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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다는 것 ('15. 1. 29 작성) 본문

공통/읽힐만한 일기

그저 좋다는 것 ('15. 1. 29 작성)

쿠프카 2015. 6. 8.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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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다는 것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어릴 때 읽고 나도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했던,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는 두 소꿉친구의 이야기다. 어린 마음으로 막연히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은 가만히 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기만 해도 행복할 거야.’


  하지만 동화는 동화일 뿐이었다. 그 순간은 행복할지 몰라도 만남은 영원하지 않고 곧 헤어져야만 한다. 생업으로 돌아간다. 그 다음에는 오히려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 편안한 서로의 존재가 일상을 더욱 괴롭게 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던져두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그런 안일한 생각에 빠져 우울해 하며 정작 눈앞의 새로운 발견에 눈이 어두워지지는 않았는지. 동화 속 이야기가 너무 부러워서 생긴 질투심에 부러 나쁘게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를 좋아하는 만큼 걱정이 앞선다.


  친구와 함께 얼굴이 빨개지는 차별(다름)을 이겨낸 주인공이 그 가까운 친구로 인해 힘들어한다면 너무… 비극이다. 삶은 아이러니컬하다. 무엇하나 명확한 해답이 없어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철학이 있어왔다.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실한 친구를 찾는 과정이다. 그저 내 곁에서 나를 편안케 하는 불변의 동료. 정말로 그저 그대로 좋은 것.


  찾고 또 찾다가 지쳐서 얻은 것이라고는 십계와 코란과 그 밖의 잠언정도일까. 우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신은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신의 존재, 구원의 신념을 지닌 채로도 사람은 그저 삶을 좋아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애써 스스로의 운명을 파헤치다가 곧 깨닫고 만다.


“그저 좋은 것은 찾을 수 없어도 그저 나쁜 것은 우리 안에 있었구나.”


  탄식하는 이들. 삶에는 끝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결코 극복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살아가게 된 머리 굵은 사람들이다. 너무 똑똑해서 쉬이 좌절하지 못하고 다른 방안을 찾는다. 울면서 끝을 넘어설 방법을 강구한다.


  가령 독서, 창작, 예술을 즐기거나, 가족애, 언덕에서 소꿉친구와 함께 하루가 영원할 듯이 시간을 보내기. 등등.


  참으로 다양한 삶이라서… 나는 동화책을 덮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동화란 참 좋구나. 가슴에 남은 여운을 그저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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