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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장르

콜라는 다 맛있어

쿠프카 2019. 5. 21.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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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야."

구연산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가리지 않고 마셔. 각자 나름의 풍미가 있다고 생각해."

  "미친 소리 하지 마."

마시던 빨간색 캔 콜라를 원형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구연산은 소파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얘, 사람은 항상 이데아를 찾으려 노력해야 해. 비록 우리가 동굴 안에서 태양을 등진 채로 묶여서 세계의 그림자만 보고 있다 하더라도 분명 원형이라는 건 존재해."

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꽉 붙잡고는 강제로 탁자에 시선을 향하도록 한다.

  "저게 콜라의 본질이야, 알았어?"

  "누가 보면 플라톤의 화신인 줄 알겠어."

  "철학가라면 누구나 플라톤이 되어야지."

아니면 나처럼 전과하던가.

구연산은 다시 터벅터벅 소파로 돌아가 앉으며 빨간 콜라를 집어들고서는 다시 들이켰다.

나는 마음 속으로 초침의 간격을 세고 있었다.

1분은 60초. 60번의 움직임으로 초침보다 몸집이 큰 분침은 겨우 한 번 살짝 움직인다는 것.

분침은 항상 초침보다 상사인 셈이다.

두 사람의 상하관계는 관점이 차이일 뿐이다. 시계가 없는 세상에서라면 초침과 분침은 평등하다.

  "배달이 늦네."

  헤아린 시간과 배달 어플에 표시되는 시간의 괴리는 10분을 넘어섰다.

  "피자 한 판 먹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이럴 거면 그냥 나가서 먹을 걸 그랬어."

구연산은 차가운 콜라캔 표면에 응결된 물기가 묻은 오른손으로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적당히 매만졌다.

목덜미 즈음에 머리카락을 한데 묶은 적갈색 머리끈은 예전에 내가 빌려주고선 잊어버렸던 것.

  "주문 받았다는 걸 잊어버렸을지도 몰라."

  "끔찍한 생각이네."

정말 소름끼친다는 듯 몸서리를 치며 구연산은 손에 쥔 캔을 분리수거용으로 만들어 둔 작은 상자 안에 던져 넣었다.

캔은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가 상자의 모서리를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약간 남아 있던 콜라가 캔이 추락한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에 비산한다.

  "네가 치워."

  "괜히 세게 던졌네."

구연산은 강도가 센 욕을 입에 담으며 싱크대에 널어둔 행주와 그 옆의 키친타올을 한 장 뽑아 사건 현장으로 가져와서는 흘린 콜라를 적당히 닦아냈다.

  "맞다."

싱크대의 중성세제를 조금 묻혀 손을 씻어내고선 소파가 아닌 침대 위에 누워 있던 내 옆으로 와 걸터앉은 구연산은 기성을 냈다.

  "왜?"

  "피자 시키면서 콜라 따로 주문 안 했지?"

  "응."

  "서비스로 콜라가 오려나... 와도 빨간색이 아니면 안 마실 거야."

  알아서 잘 시켰어야지. 구연산은 옆으로 누워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불평했다.

  "파란색 콜라가 오면 내가 다 마셔야겠네."

  "아니. 그냥 냉장고에 넣어둬."

  "왜?"

  말의 의도를 묻는 나에게 구연산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내가 없을 때 마셔."

  쿵쿵.

  초인종을 울리는 대신 문을 두드리는 배달원.

  "나가요."

  나는 스마트폰을 잘 보이도록 베개 위에 올려두고 벌떡 일어나 피자를 받으러 나간다.

  꽤 오래도록 구연산과 함께 지냈지만 이렇게까지 빨간 콜라에 연연하는 줄은 여지껏 몰랐다.

  배달은 늦었지만 포테이토 베이컨 피자는 뜨거웠다.

  먹는 데에 집중하느라 나와 구연산은 서로 말이 없었다.

  피자를 먹으면서 나는 플라톤과 시간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빨간색 콜라 한 박스를 주문하는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탄산이 가득 든 콜라는 어떤 종류든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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