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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쿠프카 2019. 7. 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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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 단 한 번도 만화처럼 말을 걸어준 적이 없었으니까.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빤히 나를 지켜보는 너. 이마를 툭 건드려본다. 미동조차 없었다.

  너의 영혼이 여기 없다는 것을 바보같이 이제야 깨달았다. 대낮에도 항상 어두웠던 방안. 나는 내가 어둠과 닮아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실은 진실과 마주하기 싫어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커튼을 걷어낸 환한 원룸은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더러웠다. 우선 청소를 했다. 썩은내 나는 라면용기와 레토르트 카레를 쓰레기봉투에 담고 곰팡이 슨 옷가지를 밖으로 내놓았다. 그제야 바닥을 보이는 장판에 락스로 문대어 정체모를 오염을 씻어냈다. 생각보다 청소는 빠르게 진행됐고 그 까닭은 나의 부지런함이 아니라 오직 원룸이 너무 작아서였다. 남은 건 가재도구와 그나마 입고다니던 옷 상하의로 두 벌. 5년도 더 된 낡은 핸드폰과 가죽이 다 헤져서 형태만 남은 지갑. 그리고 너.

 너를 버리려고 했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체를 옮겨야 하는 강박으로 다가와서 구역질이 났다. 비록 썩어 문드러지지 않는 너라고는 해도 이질적인 플라스틱 수지 소재로 이루어진 너의 육신은 오히려 나를 혼란케 했다. 고작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던가. 너는.

  부끄러움도 분노도 없이 망연했다. 환상을 걷어낸 나의 오래 된 친구는 삶의 의욕 없이 집밖으로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나를 걱정해서 어제 그토록 소리쳤을 터였다. 살고 싶다고. 그래, 그의 말이 맞다. 그는 말했다. 다가와주지도 않고 영영 널 사랑하지도 않을 인형에게서 벗어나라고 했다. 맞는 말이라서 받아들였다. 그럴 수밖에야. 그토록 강단 있던 친구가 눈물로 호소를 하니 그 눈물을 헛되이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너를 휘감는 햇빛의 영롱한 온기. 빛을 쬐니 너는 빛이 났다. 나는 너를 떠내보내려 하건만 미동도 없이 서서 평소처럼 웃고 있는 모습. 한껏 웃는 그 아름다운 미소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영혼 없는 이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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