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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읽힐만한 일기

블로그에 올리기 위한 일기

쿠프카 2019. 9. 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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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일기의 제목은 보통 날짜와 키워드의 나열이다.

  하지만 블로그에는 게시되는 시간이 나오니까 굳이 밝혀서 쓸 필요가 없겠지. 그래서 고냥 목적 그대로 제목을 지었다. 앞으로는 키워드만 쏙 골라서 제목으로 적을 생각이다. 블로그 첫 일기라서 이렇게 짧게 밝혀 적고 가끔 나 스스로 잊어버리면 되돌아와서 이걸 읽고 다시 양식에 맞춰 적어나가겠지.

 

 

  9월을 반 이상 보낸 지금은 가을이 되어가는 한창이고 캠퍼스에는 은행잎과 그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휴학을 거듭한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명확한 목표의식은 있었지만 그에 도달하지 못했다.

  창작이란 참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버겁고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돌아보니 나는 무게를 많이 느끼는 타입이었다. 글을 쓰는 것과 창작을 한데 묶어 생각하려고 했지만 내게 있어 이 둘은 아무래도 다른 궤적에 있었다.

  좀 더 세밀히 끄집어내자면, 무언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창의적인 활동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멋진 모양새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를 밝히고 '너'를 생각하는 일련의 시퀀스가 참 버거웠다.

  나는 누구이고 나를 알고자 할 가상의 너는 누구란 말인가.

  아직도 이 물음을 자문하지만 굳이 해답을 찾기 위해 묻는 것은 아니다.

  텍스트 안에 나 자신이 납득할만한 마침표를 찍고 나서 너에게 읽혔으면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오기까지는 너무나도 멀다. 작가의 활동시기에 대한 객관적 지표가 나를 위로하지만 개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위로가 아닌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치열한 직업의식이 있으냐 하면 그것또한 아니었다.

  등단과 투고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무척 많다. 그런 이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재능과 노력을 겸하여 자신 나름의 방향성을 이미 획득하고 조금씩 전진해 나가는 예비작가들 옆에서 나는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이 또한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나의 문제다.

  가령 노래를 부른다고 치면 내 목소리의 음색과 스타일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

  군대에 입대해서 자대 배치를 받고 선임과 첫 코인노래방에 갔을 때 내 노래를 두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 같다"며 함께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맞는 말이었다. 여지껏 나의 삶 속에 있어 노래와 악보, 기교란 찬송가나 CCM을 어떻게 부를 수 있느냐였으니까.

  창작은 몰개성의 대척에 서 있고, 나는 그리 개성적이지 않았다. 물론 이 복잡다양한 시대에서는 그 몰개성의 유형에 따라 그것 자체가 일종의 개성이 되기도 하겠지만. 몰개성에도 너에게 보다 쉬이 다가설 수 있는 아름다움을 내포한 유형이 있을 터. 나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버벅이고 보다 나에게 맞는 길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렇게 점점 되고자 하는 '나'와 될 수 있는 '나'의 간극은 벌어지기만 하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항상 후자를 선택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하도록 하자.

  어쨌든 시간이 쿡쿡 나의 뒷덜미를 찌르는 걸 못 이겨 겨우 나아가는 것은 싫다.

  예술에는 참 다양한 방식이 있다. 한 예술적인 작품이 너에게 다다르기까지는 참 다양한 손을 거친다. 내 생각을 곧장 너에게 전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니, 적어도 남들보다 작은 이 두 손으로 일단의 조력자 역할로서 시작해보는 것 또한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고!

  물론 그 조력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느냐의 문제 앞에 서 있는 상황이지만... 아무튼.

  난 회의적인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긍정적인 부류라고 자부한다.

  삶은 항상 아이러니컬 하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에 재미있으니까.

 

  지금은 외견도 그렇고 이룬 것도 적은 참 초라하게 느껴지는 겉표지 속 이야기지만 언젠가 네가 나의 이야기를 읽고 미소짓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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