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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루 れをる] 메류 メリュー [불러보았다] (가사 번역, 영상 외부링크) 본문

번역/노래

[레오루 れをる] 메류 メリュー [불러보았다] (가사 번역, 영상 외부링크)

쿠프카 2015. 6. 1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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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나 씨의 원곡 코멘트는 "灯篭流しの唄" 라고 이 곡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다나 강가에서 등롱을 흘려보내는 행사는 죽은 사람의 혼을 애도하는, 명복을 비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夕陽が落ちる様に胸が染まるので 
노을이 저물듯 가슴이 물들고 있어서

耳鳴りのような鼓動を隠して
이명이 울리는 듯한 두근거림을 숨기고




バスに乗った僕は言う 君は灰になって征く 
버스에 탄 나는 말해 너는 재가 되어간다고

たとえばこんな言葉さえ失う言葉が僕に言えたら
만약 이런 말마저 잃은 말을 내가 말할 수 있었더라면




灯籠の咲く星の海に心臓を投げたのだ 
등롱이 핀 별의 바다에 심장을 던졌던 거야

もう声も出ないそれは僕じゃどうしようもなかったのだ

이제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그건 나로선 어쩔 수 없었던 거야



悲しくもないし苦しくもないのに 
슬프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데도

辛いと思うだけ 辛いと思うだけ
너무하다고 생각할 뿐이야 너무하다고 생각할 뿐




古びたバス停の端傘を持った僕がいる 
녹슨 버스 정류장 끝에 우산을 든 내가 있어

今でさえ埃を被った夜空の隅に足はつくのに
지금이라도 먼지를 뒤집어쓴 밤하늘 구석으로 걸음은 닿을텐데




心臓が痛いから死んだふりの毎日を見なよ 
심장이 아파서 아픈 척 하는 나날을 보라구

もういっそ死のうと思えたなら僕はこうじゃなかったのだ

이젠 차라리 죽자고 생각했더라면 나는 이렇지 않았을 거야



どうせ死ぬくせに辛いなんておかしいじゃないか 
어차피 죽을 텐데 너무하다고 말하는 건 이상하잖아

どうせ死ぬくせに辛いなんて
어차피 죽을 텐데 너무하다니




だから愛さえないこんな世界の色に僕の唄を混ぜて 
그러니까 사랑조차 없는 이런 세상의 색깔에 나의 노래를 섞어서

もうどうかしたいと思うくせに僕はどうもしないままで
이제 어떻게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あぁあ
아아아




灯籠の咲く星の海に心臓を投げたのだ 
등롱이 핀 별의 바다에 심장을 던졌던 거야

もう声も出ないから死んだふりなんてどうもなかったのに 
이제 목소리도 나오지 않으니까 죽은 척이라니 아무렇지도 않았으면서

僕もきっとこうで良かったのに 
나도 분명 이렇게 되어서 다행인데

君がずっと遠く笑ったのだ
너는 계속 멀리서 웃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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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루... 역시 프로...

앞으로는 번역한 노래에 간단하게 감상을 적겠습니다. 지금까지 번역을 통해서 제가 생각하는 노래의 해석을 전하려고 했는데 짧게나마 글로 적는게 매 순간마다 바뀌는 노래에의 인상을 있는 그대로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닥 대단찮은 감상입니다.

이런 류의 노래가 그렇듯 시적 형상화가 강하고 "灯篭" 에 초점이 맺혀 있고요.

여기서의 僕는 사랑을 잃은 세상에서 심장을, 살아갈 동력을 등롱이 흘러간 그 별의 바다로 던져버리네요. 비참하고 죽을 것만 같은 나쁜 감정에 사로잡혀서... 차라리 죽어버리자고 생각하면 그런 생각들. 비참하고 부당하다는, "너무하다"는 피해의식이 있고. 그렇지만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저 등롱을 흘려보내고. 노래하고 소리지르고. 이런 과정이 한 곡에서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호소력 있게 표현됩니다. 물론 레오루의 표현도 일조를 하고요 ^^ 하하.

저는 보컬로이드로 만들어지는 오리지널 노래가 종종 마음에 드는데요. 그 이유를 이 노래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말도 안되는 관념과 사상으로 허울좋게 꾸미는 형상화를 시도하다가 말아먹는 곡도 무척 많지만 이렇게 직접 느낄 수 있는 삶과 원초적인 감정(온갖 방향에서의 사랑, 슬픔, 고통 등)을 제대로 표현할 때도 있다는 것.

이러한 패러다임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인간의 정서나 초월적인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과 좌절 등등을 노래한 것. 그것이 종교이고 무당의 굿 같은 것이겠죠. 특히 일본 특유의 정서와 노래가 만나서 이런 보컬로이드류 곡들은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굿'을 노래하고 있는 거겠죠.

현대인은 이미 이전 세대에서 마주한 실존 앞에서 지극히 당연한 상실감, 공허함에 빠져 있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삶의 방향성이나 믿음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믿거나 합리적 이성을 갖춘 대다수의 사람들은 종교가 아닌 논리를 갖춘 여타 이념들을 내면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 인생의 신념이자 절대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삶에 의미를 찾는 겁니다. 이러한 흐름은 신이 부재하는 이 21세기 시대상에서는 당연한 흐름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메류」나 역시 레오루가 부른 「Astronauts」 같은 곡에서는 삶에 대한 성찰이 드러나고 곡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라고는 그저 노래하고 인내하는 것. 앞서 말했듯 '굿'입니다. 이렇듯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삶의 상실을 극복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러한 노래를 우리의 종교로 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종교 부재의 일본이라서 이런 곡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성이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 같지는 않네요.

노래를 믿는다. 노래가 세상을 구한다.
허무맹랑한 생각이지만 적은 사람이라고 해도 상처입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래. 그런 노래로서 이 메류가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으로 따지면 테제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의도성이 다분한. 누군가를 구하고자 하는 그런 노래. 좋아합니다.

무슨 감상이 더 기네.
그리고 한참 찾아봤지만 '메류'에 대한 원뜻을 모르겠습니다. 대체 뭘까요? 제목을 이해 못해서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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