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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읽힐만한 일기

방학

쿠프카 2015. 6. 2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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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방학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건 분명 어른이 되고 나서다. 어릴 적에는 마냥 어른이 되면 종잡을길이 없던 삶의 목표를 자연스레 좇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바쁘고 열심히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그런 만화 같은 나날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실상은 더 처참했다. 만화에서, 소설에서 그렇듯 명백하게 보이는 삶의 갈등구조나 목표는 없었다. 눈앞에 처한 현실은 그저 3개월 간의 여유시간과 그것을 채 메우지 못한 나의 작은 캘린더 하나. 두 달을 아르바이트라고 적었다가 학기 중에 꾸었던 꿈, 가령 한참 여유롭게 소설을 쓰거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사항을 떠올리고는 다시 지워낸다.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지나가는 시간들. 그런 시간이 아까워서 그나마 즐겨보겠다고 손 대는 유흥거리. 어른이 되어 맞이한 삶은 그렇게 어른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하루 일기라도 쓰자. 혹은 가끔씩 듣던 일본 노래나 번역해보자. 그런 삶의 차선이라는 의식에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도 쓰였다 해서 다 같은 글은 아니다. 더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포스팅하는 글은 쉽게 쓰여진 글이고 즉각 내뱉는 말은 다듬어지지 않고 투박한, 아쉬운 글이다. 그래서 블로그나 일기에는 더 좋은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어설픈 자신에 대한 자조가 자연스레 묻어날 것이다.

  일단 쓰고 보자. 어른이 되어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라고는 세상이 마음대로,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구잡이로 쓴 글에서 나오는 미학도 있을 것이며 번득이는 재치에서 포착할 깨달음도 분명 존재한다. 쓰지 않았거나 생각치 않았더라면 결코 세상 밖으로 내놓지 못했을 나 자신의 생각.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시행착오, 그 경험.

  미숙하게나마 실제로 움직였다는 것. 삶이 정체하지 않았다는 것에 스스로 다독이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 우리네 젊은이들의 삶은 아닐까. 방학은 다들 이런 삶의 차선을 깨닫고 마는 비참하고도 자유로운 시간이다.

  그러나 설령 자유가 비참하고 헐벗은 것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쉬이 그것을 내동댕이치지는 말 것. 고작 말뿐이라 하더라도 그런 면모를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은 듯 마치 절대신을 믿듯 맹종하는 이들이 있어 더욱 생각을 다잡는다. 오늘날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내가, 네가 그렇게 생각하듯.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이번 방학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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