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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번역의 코티지
유년의 끝 본문
죽음에 초연해지고자 했지만 막상 다가오는 두려움 앞에선 다만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독한 진통제의 약효 사이에서 짧고 견딜만한 정도로만 왕래하는 격통. 흐릿한 의식 속에서 단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넨다.
'정말 이게 마지막일까?'
수도없이 자문했지만 희망은 없었다. 이미 나는 죽어가고 있다. 추락 이후, 머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머리 아래의 모든 신체는 지면과의 충격에 짓눌려 엉망이었다. 간신히 형태를 붙들고 있지만 만에 하나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고 기력을 회복한다 해도 앞으로의 나의 삶은 예전같지 않을 게 뻔했다.
제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나는 좌절할 테지. 나쁜 감정들이 머릿속을 휘몰아치며 이내 호흡을 어지럽힌다. 가쁜 호흡을 그대로 두고 나는 생각했다. 사고 직전의 단말마. 너무나도 짧았던 활공의 감각. 대학에 남기고 온 과업과 임용 직전이었던 커리어. 삶의 아쉬움이 너무나 많았다. 어릴 적 등졌던 신의 그림자가 혹여나 나의 마지막에 드리운다면 온 힘을 다해 그 끝자락을 잡고 기도할 심산도 있었다. 막연한 허공을 더듬는 것만 같은 생각과 감정. 혼수상태에 빠진 나는 추하도록 생에 대한 의지만 남아 발버둥칠 뿐이었다.
고문과도 같던 인내의 시간 뒤, 돌연히 고통이 잦아들었다. 기운은 조금 되돌아왔다. 회광반조. 삶의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주어진 순간은 찰나와도 같고 나는 쏟아질 우울한 시선들 때문에 눈을 뜨기가 싫었다. 한 번의 기계적인 호흡. 그 후 체념에 기대어 억지로 눈을 떴다. 가족과 대학의 가까운 지인들. 오랜 친구 몇 명이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눈꺼풀을 들어올린 탓에 잠시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경험 많은 어른들의 분위기로 좌중은 모두 때가 왔음을 직감하는 모양새였다. 병원 관계자가 침착한 소란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불편한 호흡기와 몸에 꽂힌 수많은 생명줄. 병실의 빛은 밝지 않았지만 그 희미한 빛마저 시신경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점점 시야는 어두워져 간다.
죽음 앞에서 나는 시선을 한 여성에게 향했다. 근처 세미나가 끝나고 바로 달려온듯 캐주얼한 정장차림을 하고 어색하게 서 있는 사람, 김연수였다. 절대로 병실에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의 존재가 반가웠다. 우선순위를 항상 연구에 두는 괴팍한 성격 때문에 연수는 대학 안에서의 교우관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학계에서는 뛰어난 학자일 테지만 능력이 뛰어난만큼 소꿉친구인 연수의 미래가 항상 걱정이었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실제로 그에게 다가간 건 우연히 같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부터였다. 나는 더욱 배려심 있는 친구였어야 했다. 사회구조의 단층을 연구하는 것이 나의 지상과제였으나 실은 항상 바로 옆에 있던 사람에게도 관심을 갖지 못했다. 항상 타인을 밀어내는 태도로 일관한 연수라 하더라도 나의 마지막을 지키러 왔다. 그의 속내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나의 존재가 그에게 다소나마 의미가 있었기 때문임은 확실했다.
모든 감각이 잦아들고 나를 위로하는 울음 섞인 목소리도 멀어진다. 아무런 상념 없이 필라멘트가 뚝 끊기듯 생명을 상실하는 바로 그 순간. 내가 지켜 본 생애 마지막 이미지는 김연수의 입가가 작게 미소를 띠는 불길한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