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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번역의 코티지
전투 직전의 잡담 본문
한 무리의 화살이 머리 위를 지나 후위의 진영으로 날아간다.
바람을 꿰뚫는 기묘한 소리.
끔찍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전투를 치루면서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온갖 괴성과 격음 사이에서도 저 화살의 비가 내는 소리만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히아신스 연합왕국이 유독 궁수대 양성에 공을 들였나봐."
자신의 직속 휘하로 있는 열다섯의 정예병은 사진의 혼잣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오랫동안 함께 훈련한 동지들이었지만 생생한 전투의 압박감 속에서 이들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궁수는 확실히 위협이지만 활시위를 당기다보면 저들은 금방 지쳐. 화살도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고."
"공왕工王이 적진에 있다면 화살은 끊임없이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스스럼없는 성격 덕에 모두에게 인기가 좋은 수란이 살짝 잠긴 목소리로 조심스레 사진에게 물었다.
"모든 전쟁은 적국을 무너뜨리고 그 나라의 근간인 왕을 휘하에 들이기 위해서야. 공부工部는 나라의 모든 도구와 기재를 만드는 사람들이잖아. 그런 중요한 인재들이 험한 전쟁터까지 나서서 고작 화살 같은 군수품을 만들고 있으려면 그야말로 국운이 달린 결정적인 전투여야 해."
이 전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사진은 단언했다.
"하령산맥의 동관과 서관은 대륙을 관통하는 중요한 통로지만, 싸워 이겨서 어느 쪽 지형을 차지한들 양쪽 진영이 이후에 적진의 중심부까지 진격하는 건 힘들어."
"잃을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수란은 곧장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연의 순리는 '왕'에게서 나온다. 저마다 맡은 역할이 다른 수많은 왕이 전쟁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시달리다가는 히아신스나 우리 셀비아 제정 같은 대국이라 해도 문제가 생길 거예요. 혹여나 전면전을 벌이다가 과거 사사육십국四邪六十國 시대 때의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군주가 없을 테니까."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대화에 의욕이 생긴 수란 덕에 두 사람은 구릉 너머 적을 앞두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잔혹한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친숙한 두 사람의 만담 덕분인지 팽팽했던 주위의 긴장은 조금이나마 잦아들었다.
"'한 국가가 3할 이상의 왕을 잃으면 어김없이 그 나라는 패망한다.' 사사육십국의 수많은 고사가 말해주는 교훈이죠."
"그래, 물론 우리 셀비아 제정은 역사를 가르칠 때 그 고사 속 의미를 절반만 믿으라고 가르치고는 하지. 역사는 사례일 뿐이지 완전무결한 진리가 아니야.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왕이 급속히 죽어나가는 것은 불안요소다. 어떤 나라든 쉬이 왕을 잃는 것을 두려워 해."
사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힘주어 다시 말했다.
"이제 우리는 주어진 명령대로 구릉 너머에 자리잡은 적장에게 달려든다. 저쪽이 제정신이라면 급습당하자마자 병부兵部의 왕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뒤로 물릴 거야. 그렇게 적의 전선이 뒤로 물러나도록 하고 우리는 바로 후퇴한다."
사진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빛에서 훈련된 결기가 느껴졌다. 사진은 지금껏 훈련한 전우들이 믿음직스러웠다.
"만약 적진이 물러서지 않는다면."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들며 사진은 구릉 위로 올랐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약 300여 명의 군세. 저들의 적의가 자신에게 향해올 것을 생각하면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 것이라는 공포가 온몸에 스며든다.
"다가오는 적병을 모조리 도륙하고 물러서도록 해야지."
등 뒤에 자신을 따르는 무거운 시선을 애써 감내하고 사진은 칼을 치켜들고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자. 다들 헛되이 죽지 않기를 빈다."
큰 함성과 함께 열여섯 명의 기동대는 서관 전투의 어떤 빠른 속도로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