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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번역의 코티지
이번에 큰 마음을 먹고 그래픽카드(이엠텍 3080)와 모니터(M32U)를 새로 샀다. 첫 4K 환경, 유려한 HDR 기능 등등... 너무 만족하고 사용하고 있는데 기가바이트에서 제공하는 OSD 소프트웨어 'Sidekick'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마침 윈도우 11로 업그레이드 한 것도 있어서 다운그레이드, 포맷 등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봤지만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구글링을 하면서 1) 이전 버전의 유틸리티 프로그램을 사용해보라든가 2) USB 허브 관련 드라이버를 재설치해보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그대로 시도해봐도 문제는 여전했다. 그러던 와중에 레딧 스레드(링크)에서 'Genesys Logic USB filter driver'를 삭제해보라는 댓글을 찾을 수 있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삭제해..
올해 2월 초 즈음부터 게임을 할 때든 컴퓨터를 그냥 켜둔 채로 자든 소설을 쓰고 있을 때든 원인을 할 수 없는 블루스크린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윈도우10 업데이트로 무언가 내 소프트웨어 환경에 사소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쓰기 시작했는데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WhoCrashed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크래시 덤프를 읽어보니 대체로, 모듈 : ntoskrnl.exe 혹은 amdppm.sys 에러 : irql_not_less_or_equal / attempted_wirte_to_readonly_memory / system_service_exception 외 다양한 문구의 오류가 가득했다. 관련 증상을 하나하나 구글링하니 보통은 오버클러킹에 실패하거나 램과 관련한 고장, 드라..
1. 기획 목표 - TRPG식 캐릭터 시트를 중심으로 내러티브 전달의 중심이 되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성향과 기본 능력치, 특성 및 각종 이벤트 플래그에 따라 다분기하는 국가 경영 시뮬레이션 기반의 롤플레잉 게임 작성. 2. 기획 의도 - 다회차 플레이가 가능하며, '플레이어의 서사 경험'을 중요시 하는 다분기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고자 한다. - 기획 내 모든 게임 구조는 낯설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최대한 다양한 경험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 '플레이어의 서사 경험'을 위해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는 "롤플레잉"을 중심으로 플레이하지만 그 외연에는 세계관이 생동하는 "시뮬레이션" 기반이 깔려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게임 장르적으로 '국가 경영' 요소가 선행하는 것. - '국가 경영'은..
0. 첫번째 풀앨범 발매 즈음인 4월부터 작성된 것이라 다듬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노래를 듣다가 가끔 수정하고 싶을 때를 위해서 블로그에 새로 작성합니다. ※ 전제 1 : 요루시카 명의의 모든 노래가 시적 형상화를 유사하게 가져간다. ※ 전제 2 : 모든 곡의 작곡가는 한 명 (엘마), 가사 속 화자의 경우는 엘마와 상이할 수 있지만 엘마가 에이미의 심정을 적극적으로 추론한 결과로 볼 수 있음 배경 유추 포인트 그날의 여름, 정류장 코모레비 그저 너에게 맑아라 2:54 부분 1. 반영론적 해석 방향 나부나 본인의 예술지상주의적인 페르소나와 그것을 정제하여 보다 대중적인 종합예술(영상) 창작으로 나아간 이른바 '엘마'의 페르소나의 대결. 일말의 화해 제스처 없이 에이미 죽음이라는 플롯으로 향한 것..
내 일기의 제목은 보통 날짜와 키워드의 나열이다. 하지만 블로그에는 게시되는 시간이 나오니까 굳이 밝혀서 쓸 필요가 없겠지. 그래서 고냥 목적 그대로 제목을 지었다. 앞으로는 키워드만 쏙 골라서 제목으로 적을 생각이다. 블로그 첫 일기라서 이렇게 짧게 밝혀 적고 가끔 나 스스로 잊어버리면 되돌아와서 이걸 읽고 다시 양식에 맞춰 적어나가겠지. 9월을 반 이상 보낸 지금은 가을이 되어가는 한창이고 캠퍼스에는 은행잎과 그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휴학을 거듭한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명확한 목표의식은 있었지만 그에 도달하지 못했다. 창작이란 참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버겁고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돌아보니 나는 무게를 많이 느끼는 타입이었다. 글을 쓰는 것과 창작을 한데 묶어..
엘마의 일기장 자체가 케이스. 일기장 맨 뒤에 사진과 앨범 CD가 동봉되어 있다. 일기의 내용은 무척 상세했다. 그 상세한 수준이 일기라기보다는 필사적으로 두 사람의 만남과 그 행적을 기록한 자전에 가까운 느낌이다. 한번 쭉 읽어보았는데 일기장 속 엘마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었다. 연출된 그의 필적이나 여행을 마칠 즈음의 일기를 더듬다보면 엘마는 참 강한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삶의 좌절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 스물 일곱의 에이미든 여행의 끝자락에 선 엘마든.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태도로서의 두 사람은 참 아름답다. 아름답지만... 픽션을 조금 현실로 끌어당기면 조금 무섭고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블로그에 두서없이 적었던 요루시카 서사..
이름을 남긴다는 건. 한정된 시간 속에서 유한한 삶의 결점을 극복한 사람이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하늘 아래 내리 쏟는 소나기를 온전히 다 피해내는 행인이 없듯 삶의 여정을 걷는 이에게 예기치 않은 끝은 찾아온다. 시기가 저마다 다를 뿐이다. 하지만 폭삭 젖어버리기 전에 우산을 펼칠 수 있듯 이름을 세상에 남기는 것이란 유한을 무한으로 바꾸고 실현 불가능한 기적을 조그맣게나마 성취하는 과정이다. 작은 액자에 걸려 사람들은 나의 삶과 죽음, 그 가치를 되새긴다. 그 때 떠오르는 한 조각 그리움과 눈물은 한낱 나무 프레임에 지나지 않은 액자를 적시어 물기를 머금는다. 이후에 잘 말려도 젖은 부분은 자국을 남긴다. 그 자국마저 액자가 썩고 닳아 없어지며 이내 역사의 거실에서 사라진다. 결국 사라지는 것은..
만약 내가 어쩔 수 없는 다분히 폭력적이고 운명적인 사건과 맞딱뜨린다면 그것을 순응할 수밖에 없을 테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거나 자연재해로 모든 것을 잃거나. 이미 도래한 비극을 피할 수는 없고 부정한다고 해서 본래 평온했던 상태로 되돌릴 수도 없다. 인간성이란, 이와 같이 압도적인 고통과 시련 속에서 좌절하고 분노하다가 끝내는 꺾여 고개를 푹 숙이고 인정할 뿐인 패배의식이다. 나는 지극히 연약하다. 그러한 인정의 결과물이란 죽음의 보편을 이해한 지금의 나, 앞으로의 너이다. 너무도 당연한 앎을 사람들은 가치와 의미를 보전하기 위해 애써 모르는 척 하기도 한다. 당장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지만 그것에 연민을 보내지 않는다. 일일히 모든 비극에 슬퍼하다가는 우울증에 빠지고 말 것이었다. 더 나..
1. 기존 한자의 의미를 바꾸지 않고 조합해서 쓰는 경우 2. '자유'처럼 이전부터 있었던 한어의 의미를 바꿔서 사용한 경우 (중국에서 번역어로 사용하기 시작, 방법론 차용) 3. '부동산'처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낸 경우 - 권리, 의무는 중국에서 차용한 번역어. '동산', '부동산', '미필조건', '민권'(droit civil, 불어, 민법의 번역) 등은 미쓰쿠리 린쇼(명치 당시 일본의 번역가)가 스스로 만든 신조어. - 연설, 토론, 판권 등의 조어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만든 것. ※ 출처 :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 등 2명, 이산.
가끔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 있다. "자신에게 솔직하자." 이는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의 가치판단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해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이다. 그러나 '나'라는 자아는 타자와 사회를 거울로 두고 자신을 계속 비추어보아야만 비로소 형성된다. 우리는 스스로 이름을 짓고 태어나지 않는다. 자신이 결정한 바 없는 '나'를 규정짓는 상징, 타인에 의해 붙여진 이름을 지니고 태어난 개인은 자신의 몸이 완전히 으스러질 때조차 그 이름을 되뇌는 것으로 자기동일성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나'를 들여다 본다. 나는 외로운 단독자일 수 있으나 그것을 결코 획득하지 못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지만 그것을 의식하는 것과 내면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설령 개인의 본질이 지극히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