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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번역의 코티지
자기검열 본문
가끔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 있다.
"자신에게 솔직하자."
이는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의 가치판단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해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이다.
그러나 '나'라는 자아는 타자와 사회를 거울로 두고 자신을 계속 비추어보아야만 비로소 형성된다.
우리는 스스로 이름을 짓고 태어나지 않는다.
자신이 결정한 바 없는 '나'를 규정짓는 상징, 타인에 의해 붙여진 이름을 지니고 태어난 개인은 자신의 몸이 완전히 으스러질 때조차 그 이름을 되뇌는 것으로 자기동일성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나'를 들여다 본다.
나는 외로운 단독자일 수 있으나 그것을 결코 획득하지 못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지만 그것을 의식하는 것과 내면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설령 개인의 본질이 지극히 신성하고 이데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현상계 안에서 한 개인은 끊임없이 생동할 뿐인 하나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즉, 정신분석의 단편을 그러모아 짤막하게나마 공부한 나로서는 모든 자아가 사회 구조 아래에서 억눌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비록 헤겔과 사르트르, 소쉬르와 푸코 그리고 라캉이 닳은 과거의 학문이더라도.
나는 무의식을 믿지만 그것이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매 순간에는 성령이 함께하심을 있음을 '믿지만' 그것은 결코 언어로서 이해할 수 없음을 안다.
"자신에게 솔직하자"라는 나의 혼잣말은 결국 나의 모든 것이 한 고귀한 영혼이 연속적인 시공을 통과하며 경험한 일련의 사건과 그 반영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의미가 전적으로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니.
'나'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될 이유가 없음과 동시에 모든 개인의 가치는 수많은 관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이른바 자기검열은 의식의 표면에서 '나'를 사회의 공신력 있는 가치판단 기준에 따라 재단하는 것.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내가 되어가는 것이니 나는 히피적이지 않으려 한다.
깨어진다면 깨어질 따름이다.
그러니 이 맥락의 철저한 대척점으로서 적어도 모든 개인의 상상과 그 자유로운 창작 속에는 일말의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절대로 벗을 수 없는 강철로 만든 굴레를 벗어내고자 하는 외로운 짐승의 비참한 고개짓은 필연적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