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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에 맞지 않은 사랑 (나중에 쓸 것) 본문

소설/경향

분수에 맞지 않은 사랑 (나중에 쓸 것)

쿠프카 2019. 4. 13.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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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계. 대학생.


  적당히 마셔.

  짧게 울리는 알람. 적당히 확인하고 곧장 스마트폰의 화면을 꺼버린다. 그에게 혼술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서는 안됐다. 주사를 부리는 근처 대학 사람들로 부산스런 밤이었다. 오늘따라 그냥 바깥 소음이 유난히 신경쓰였다. 잠시 누워보려고도 했지만 도통 잠들 수 없어서 꺼진 천장의 LED 등을 켜고 방 안을 밝혔다. 현성은 삶의 관성에 이끌려 작은 원룸 속 이부자리와 가재도구를 병적일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이었다. 다만 책상 위는 항상 어지러웠다. 두서없이 쌓여 있는 책상 위 페이퍼와 전공서적. 한 장. 또 한 장. 책상을 정리하면서 현성은 원룸 한 켠 허리 밑 쯤 되는 작은 냉장고 속 맥주를 떠올렸다. 꺼내 마신 맥주는 별 다를 것 없는 맛이었다. 한 모금씩 천천히 들이키며 현성은 지나간 이름들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한 때 친했으나 이제는 멀어진 친구들. 짧은 회고의 마지막에는 가장 무거운 이름, 이수련이 떠올랐다. 수련이라는 이름의 이미지가 좋았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 위를 멍하니 부유하는 꽃. 말수가 적고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 수련의 성격과 잘 어울렸다. 수련은 재작년까지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시간에 짓눌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사교적이지 못했던 자신의 처신에 대해 후회하면서, 현성은 반쯤 식은 맥주 한 캔의 뚜껑을 땄다. 물기를 머금은 캔의 표면과 아직도 잦아들지 않은 바깥의 만취한 괴성. 연이어 전역하기 전에 있었던 나쁜 기억들도 떠올랐다. 현성의 군생활은 무척 길었다.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후, 전역 직전에 양친을 모두 잃었다. 현성의 부친은 외국의 DIY 가구를 수입하는 작은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환갑을 앞둔 부친은 일생 처음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나섰다. 오랜 사업 경험으로 자신감도 생겼고 투자처도 몇 군데 확보했다. 수십 억의 투자를 유치한 후 부친은 개도국에서 가구 공장을 건설하던 중에 범죄조직과 얽혀 목숨을 잃었다. 현성의 모친은 꽤 우울한 사람이었다. 기질이 유해서 다른 이에게 소리를 높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장을 잃고, 시댁에 몸을 의탁하느냐 친정으로 돌아가느냐의 기로에서 모친은 남편을 따라간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골랐다. 현성은 영정사진 같지 않은 액자 너머 양친의 어색한 미소를 빤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휴가 이후 부대로 복귀한 현성은 이른 전역을 권유하는 이들을 뿌리치고 전문하사의 길을 선택했다. 도저히 복학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경직된 조직 속에 밀어넣는 것으로 심장을 좀먹는 감정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1년이 연장되는 것으로 그쳤어야 할 현성의 군생활은 충동적인 부사관 임관으로 3년 더 늘어났다. 현성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대신 그 동안 쌓아왔던 것들은 하나하나 멀어져 갔다. 대학에서의 학업, 인간관계, 문예에 대한 열정. 사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적을 확실히 격멸하기 위한 방법론이 적힌 군사교본 외에는 책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깊은 마취에 빠져든 듯 가슴 속 격정은 잠잠해졌다. 대신 무감각해진 환부 너머로 날카로운 나이프의 감촉이 둔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가슴 속을 고통 없이 헤집어 놓은 칼날의 이름은 진부하게도 시간이었다. 시간은 현성의 옛 꿈을 산산히 찢어놓았다. 장기복무를 권하는 짧은 머리의 동료들을 뿌리치고 대학에 복학한 후, 현성은 캠퍼스 속에서 대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어릴 적 문청文靑이었던 자신은 없다. 그에 반해 주위의 신입생들은 앞으로의 가능성에 취해 앳된 언어로 문학의 진의와 방향을 토론하고는 했다. 그들 사이에 끼어 선문답을 이어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시어로 죽음을 치장한다 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헛된 죽음 앞에서 비싼 수의를 입힌들 남은 사람의 허망함을 가릴 수는 없었다. 6년동안 상을 치루고 나서도 현성은 아직까지도 상중이었다. 이제는 양친의 상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잃은 우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뿐이었다.

  지독한 자기연민이야.

  두 캔 째의 맥주를 다 마셔버리고서 현성은 턱을 괴고 자퇴, 편입, 구직이란 2음절 단어를 연신 떠올렸다.



  다시 , 짧게 울리는 진동과 알람.

  난 지금 야근 끝났어. 



  얼굴을 맞대지 않는 인간관계.

  술 같이 마시자.

  기희의 하소연. 다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적의를 가진 말. 현성 역시 가지지 못했지만 시선이 다르다. 담담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넌 이러고 있을 애가 아니잖아.' '네가 이러니까 하루하루 처절하게 사는 내가 더 바보같아.'


  '마음이 있어도 너는 다른 세상 사람이었어.' - 현성은 변명으로 치부한다.

  

  수련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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